나는 살아있는 사람을 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다. 감정이라는 게 보통은 결정해서 느끼는 게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그래야만 한다. 슬픔도 희망도 옳지 않게 느껴지기에.
마지막으로 C의 집에 갔을 때, C의 어머니께서 C가 입던 옷 몇 벌을 주셨다. 어머니는 C의 부재를 제외하면 7년 전 그대로인 C의 방에서 옷을 한 번 입어보라고 극구 권하셨다. C의 옷은 나에게 꽤 잘 맞았다. C와 나는 키와 체격이 비슷했지만, 나는 언제나 C를 큰 사람으로 느꼈다. C의 어머니께서 커다란 쇼핑백을 주셨고, 나는 옷을 부모님 댁에 가져다 놓았다. 그렇지만 미국으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C의 허락 없이 C의 옷을 입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알던 사람은 이 곳에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녀는 그 사람이었다. 대체 어떤 괴물이 살아있는 사람이 사라진 것 마냥 애도한단 말인가? 어느 날인가에는 지금의 C와 알고 지낸 시간이 이전의 C와 알고 지낸 시간보다 길어질 것이다. 세월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매일 C가 보고싶다.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곰팡이가 하나 있습니다. 지의류, 영어로는 Lichen이라는 것인데요, 발음이 Liken과 같습니다. 지의류는 곰팡이와 조류가 함께하는 독특한 삶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뉴헤이븐에 있는 커다란 공동 묘지를 산책했을 때 이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공동 묘지에는 흙바닥, 나무, 돌로 된 묘비가 널려있고 해도 잘 들기 때문에 지의류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지요. 묘지 여기저기에 피어난 은색에 가까운 옥빛 조각들을 조며 왠지 꽃잎 같기도, 갑옷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닿는 순간 곱게 부스러질 갑옷을 두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곰팡이이면서 조류이기도 한 건 어떤 삶일까요. 그러한 이중성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곰팡이를 제법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2025년 예일 대학교 그래픽 디자인 석사 청구를 위해 제출한 『A Reflective Object』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나의 정체성의 일부임을 처음 알게 된 건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였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나와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 사이의 틈새와 어긋남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단지 새로운 장소 뿐 아니라, 나 자신 또한 낯설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관찰자가 되어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낯설음은 언어로부터 기인했다. 스스로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발음하는 것은 기묘하다. 가끔씩은 누군가가 문장 속에 섞은 ‘Do you wanna’가 꼭 ‘지원’처럼 들리기도 한다. 미국에서 한국어로 된 글을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종종 번역을 해야 했다. 번역은 철저하게 ‘의도적인’ 행위이다. 말이나 생각을 할 때 결과값의 언어를 직접 끄집어내는 것과 달리, 번역은 원어로부터 시작한다. 번역은 곧 분리되어 있는 입력값과 결과값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원어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찬찬히 살피고, 그것과 가장 가까운 쌍둥이를 번역된 언어에서 찾기 위해 정성 들여 시간을 할애한다. 원어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 번역된 언어는 원어의 대체재가 아니라 원어가 갖지 못하는 고유함을 지닌 거울 언어가 된다. 두 언어는 낯선 사이지만, 서로를 들여다 보고 있다. 이제 나는 낯설어 보였던 거울 속의 내 자신을 보며 생각한다. 이것 또한 나다.
거울은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지 않지만, 마주하고 있는 모든 걸 드러낸다는 점에서 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직면함으로써 작동되는 엑스레이 오브제인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이 심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은 분명 어색한 일이지만, 무언가에 있어 낯선 존재로 살아가는 것에는 분명히 해방적인 측면이 있다.
나는 이 거울 보기를 멈출 수 없다. 멀어질수록 점점 커다래지는, 다른 언어로 말을 하는 나를 보여주는, 또 나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거울.
작년 말부터 집에 대한 생각을 하며 적었던 자투리 글과 노마드랜드에 대한 감상을 엮어보았다.
2024년 12월, 뉴워크 공항으로 가는 암트랙 기차에 앉아서
며칠간의 일상을 지탱해줄 필수품을 커다란 캐리어와 캔버스 토트백 안에 욱여넣은 채로, 내가 한글 자판으로 입력하는 이 글을 아마도 읽을 수 없을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디 또는 무엇에 매여 있는 존재인가 생각해본다.
2024년 12월,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낯설어진 생활을 영위하고, 이 가게는 새로 들어섰네, 그 식당은 문을 닫았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달라진 그림 찾기를 했다. 낮에 갔던 길도 밤에는 곧잘 못 알아보는 나에게 있어 풍경이 낯설어지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지난 만남과의 사이에 제법 시간이 흘렀어도 사람들은 어제 본 듯 하다. 나에게 건네는 말의 투, 끌어안는 몸의 움직임, 얼굴의 작은 근육이 짓는 표정, 모두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들.
2025년 2월, 뉴헤이븐에서
집 계약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바람에 졸업식 후 다소 촉박한 시간 내에 이사를 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디에 임시 거처를 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친구 몇몇이 자기 집에서 지낼 것을 제안했다.
2025년 3월, 뉴헤이븐에서
노마드랜드에서 집이란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공간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지간에. 길게 보면 모든 것은 잠시 나의 곁에 머물다가 간다. 물론 어떠한 것들은 가능한한 오래도록 있어주었으면 하지만, 나의 힘으로는 저지할 수 없는 만남과 이별도 존재할 수 밖에. 몇몇은 실제로 노마드이기도 한 영화 속 인물들은 구속을 거부하는 반골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마드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시도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이 영화를 보며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 많이 생각났다. 세상 만물에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하는 경지에 이르면 나의 육신 하나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때때로,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바라고, 나아가서 잘 모르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또 아예 낯선 이를 친절히 대하는 것이 꼭 내가 나를 그렇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세상은 넓게 보면 모두 ‘우리’라고 생각하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우리’는 언제나 노마드이면서, 언제나 집에 있다.
우연히 신형철이 2016년도에 썼던 사설을 읽어보게 됐어.
W.H.오든의 <장례식 블루스>를 통해 사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었는데, 이 시는 1연에서는 고요함을 요구하고, 2연에서는 동참을 요구하고, 3, 4연에서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야.
장례식 블루스 - W.H.오든
모든 시계를 멈춰라, 전화를 끊어라,
기름진 뼈다귀를 물려 개가 못 짖게 하라,
피아노들을 침묵하게 하고 천을 두른 북을 쳐
관이 들어오게 하라, 조문객들을 들여보내라.
비행기를 하늘에 띄워 신음하며 돌게 하고,
그가 죽었다는 메시지를 하늘에 휘갈기게 하라,
거리의 비둘기들 하얀 목에 검은 상장(喪章)을 두르고,
교통경찰에게는 검은 면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우리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
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니.
신형철은 3, 4연의 강력한 울림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히라노 게이이치로의 책 <나란 무엇인가>를 떠올렸대. 이 일본 소설가는 진정한 나를 찾느라 번민하는 이들, 혹은 너무 많은 나 앞에서 자신을 위선자라 자학하는 이들에게, 그냥 우리에게는 여러개의 나가 있음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대. ‘나’란 나눌 수 없는 개인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 즉 ‘분인’들로 존재한다고. 우리가 여러 사람을 언제나 똑같은 ‘나’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앞에서만 작동하는 나의 분인이 생기는 것이고, ‘나’란 바로 그런 분인들의 집합이라고. 그래서 신형철은 이렇게 적었어.
이런 관점으로 ‘사랑’과 ‘죽음’이라는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사랑과 죽음의 분인론’과 함께 이제 3~4연의 절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3연이 하나하나 확인하듯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나의 모든 시공간적 좌표, 즉 내 삶에 안정성과 방향성을 부여하는 틀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이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후반부는 자기 자신을 장사 지내는 사람의 말이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권한이 당연하게도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존재의 아픔과 상실을 겪게 되겠지. 그 고통의 정도가 너무 커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무섭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어. 확장되었던 나의 일부를 잃는 건 매번 숨이 턱턱 막히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까뮈가 인간의 존재에는 이유가 없고 결국은 우리 모두가 죽음을 향하는 것일지라도 끊임없이 저항해야만 한다고 말했듯이, 상실이 두려워서 시작하지 않기에는 사랑의 중력이 너무 강력하지 않은가 생각했어. 삶이 죽음에의 저항이라면, 사랑은 고통에의 저항이 아닐까.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품고도 기꺼이 용기를 내서 나를 누군가에게로 확장시키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편지가 너무 진지했나?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마음에 들어.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너를 나는 사랑해. 그러니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줘. 내가 바라는 건 이것 하나 뿐이야.
정말 별 거 아닌데, 요전에 노량진에 수제비를 먹으러 갔을 때 네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는 게 좋았다. 그게 왜 그렇게 좋았을까.
3년 만에 너희 집에 놀러갔다. 네가 교환학생을 가기 전이 마지막이었으니 2018년 여름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어준 S와 먼저 인사를 했다. 예전엔 둘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S의 얼굴에서 네가 많이 보인다.
네가 네 방에 있으니까 아픈 사람이기 이전에 그냥 너 같아서, 내가 알던 내 친구 같아서 나는 오랜만에 그 옆에서 내 근황을 중얼거리고 책장의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방에 둘이 머물렀던 지난 시간들도 다시 떠올렸다.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네 방은 거의 그대로였다. 졸업 전시를 하고, 일을 시작하고, 또 직장을옮기고, 계절이 열세번 바뀌고, 그러는 동안 네 방의 시간은 멈춰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렇게나 익숙하고 다정한 무언가가 나를 그토록 슬프게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오전에 할머니 댁에 줌을 설치해드리러 갔다. 코로나 때문에 성당에서 하던 성경 공부를 줌으로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시대가 참 편리해졌네요, 내가 말하자 할머니는 편리한 것 같기는 한데 따라가기 어려워서 많이 노력중이라고 하셨다. 우리 세대에겐 당연하고 쉬운 것들이 할머니 세대에게는 따로 공부를 하고 책상에 메모를 붙여놔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정말 금방 사용법을 익히셨다. 수녀님과 할머니가 연결 확인차 몇 마디를 주고받은 다음 줌 회의가 종료됐고, 나는 할머니에게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를 빌려드렸다. 얼마 전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한남동 아크 앤 북에 갔을 때 샀던 책인데,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심시선이 딱 할머니 세대였고 그 자녀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 손주들이 내 또래였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는 띠지의 한 줄 평을 보자마자 우리 외가 3대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어들었다. 내가 읽고 난 다음 너무 좋아서 엄마에게 추천했고, 엄마는 읽어보더니 재밌다며 외할머니께 빌려드리고 오라고 했다. 할머니도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할머니의 삶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겪으며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와 영문학 공부를 하고 세 자녀를 키웠으며 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했지만 그 누구보다 즐겁게 살아왔다.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며, 주위에 친구가 많고 여행과 봉사활동을 꾸준히 다니고, 넷플릭스와 추리소설을 즐겨 보며, 50여개 남짓한 화분을 관리하신다. 그런 할머니는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거나 '어떤 사람이 되어라' 부담 주신 적 한 번이 없다. 나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할머니 같은 할머니로 나이 들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산 것 아닐까?
할머니 댁에서 돌아올 때 터키의 행운의 상징인 '악마의 눈'을 받았다. 이걸 왜 나를 주냐고, 할머니한테 행운이 있어야지, 했는데 할머니는 자기는 이미 행운이 다 있었다며 눈을 내게 쥐어주셨다. 나는 역시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열두 살 때 친구가 되었다. 사는 아파트가 같았고, '지원'이라는 이름을 공유했다. 체격도 외모도 닮아있어 가끔 사람들은 우리를 자매로 보기도 했다. 우리는 둘 다 예술을 사랑했다. 너는 첼로를 켰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만 너와 내가 계속해서 친구일 것임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한테는 네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믿고 싶다. 비록 네가 병원 침대에 누워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어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너는 '온 몸이 너무 아파'라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들은 너의 목소리였다. 그런 마지막은 말도 안된다. 너와 나는 이런 앞날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너는 겨우 스물 셋이고, 두 달 있으면 스물 네 살이 된다. 무엇에 화를 내야할지 모르겠지만 억울하고 화가 난다. 너는 겨우 스물 셋인데.
지난 수요일 전화로 엉엉 울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니 왜 더 쏟아져 나오던지. 창피하게도 속마음을 낱낱이 내뱉었다. 내가 왜 당신에게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위로가 필요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할 수도 있었다. 당신은 심지어 스스로를 공감능력 없는 사람이라 칭했고, 농담을 제쳐두고 겉에서 봤을 때 당신은 상당히 건조하고 차가운 편이긴 하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따뜻한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으로부터 지루하고 평범한 위로를 받고 싶어서. 아마도 그게 필요했던 것 같다.
한바탕 울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다.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2025년 4월 14일, 나는 뉴헤이븐에서 5년 전에 적어둔 이 글을 읽고 있다. 아직도 당신이 그 날 전화를 받고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던 게 고맙다. 내가 정확히 무어라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신은 기억이 날까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당신이 자기 전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한 잔씩 마시는 취미를 들였다는 말만 생각난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상하게 내가 이 집에서 좋아한 물건은 다 네 것이었어
딱 적당한 크기의 나무 도마
없는 소주 잔 대신 샷을 따라 마신 자그마한 계란 받침대
거칠지만 포근한 무게가 있는 갈색 담요
매운 양파를 썰고
씁쓸한 술을 마시고
차가운 밤 영화를 볼 때
언제나 묵묵하게 도움이 되었던 것들
한겨울임에도 30키로짜리 캐리어를 끄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2층 플랫의 문을 두드렸을 때,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 같은 반팔 차림의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느릿한 말투로 인사를 건넨 남자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차와 빵을 권했다. 그가 영어를 아주 잘해서 다행이었다. 플랫 생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5개월간 살게 될 내 방에 들어섰다. 여행길에서 막 도착한 나에게는 그날 밤을 보낼 침구라곤 없었고, 그래서 남자의 투박한 갈색 담요를 빌렸다. 피곤했는지 낯선 잠자리에서 꿈도 없이 잠을 잤다. 어쩌면 이제 여기가 내 집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7시쯤 바로 옆 방인 남자의 발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가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건 그렇게 처음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부엌에서 차를 끓여 마시고 안경을 낀 채 다이어리를 썼다. 그는 중요한 건 모두 주황색 가죽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핸드폰 메모장이 아닌 종이로 스케줄을 관리한다니. 한국말로 잘 먹겠습니다, 잘 자, 사랑해, 그리고 그의 이름을 적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그것도 전부 거기 썼다. 그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한국말로 그 네가지는 적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밤에 소파에서 같이 영화를 보거나 부엌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각자 방으로 돌아갈 때면 그는 잘 자, 사랑해라고 가볍게 얘기하곤 했다. 서툰 발음에 푸스스 웃음이 났다. 내가 독일어로 Guten Nacht나 Ich Liebe Dich라고 인사를 건넬 때 그 또한 뭐가 그리 웃긴지 실실 웃었다. 알지 못하는 언어이기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별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언어를 아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꽤나 남사스럽게 들리는 법이니까. 그런 식의 표현이 가능한 덕분이었는지 마음의 거리는 생경한 감각으로 좁혀졌다.
한 번은 저녁을 먹고 부엌에서 술을 마시다가 서로의 그림을 구경했다. 나는 문득 그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만 가만히 있어. 그렇게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새삼 아름다운 구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너 속눈썹이 참 예쁘다고. 나는 그에게 그림을 선물하지 않고 간직하기로 했다.
말투가 느슨하고, 의외로 부지런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잘 타고, 왼손잡이이고,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독일어가 유창하고, 데킬라를 좋아하고, 개와 고양이와 말을 키우고 싶어하고, 눈이 안 좋지만 운전할 때만 안경을 쓰고, 다이어리에 중요한 모든 것을 적어두고, 주황색을 좋아하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애플파이를 구울 줄 알고, 컨트리 뮤직을 좋아해서 이따금씩 기타를 치고, 입술에 물감이 묻은 줄도 모르고 그림을 그리면서 식탁에 생긴 얼룩은 못 견뎌하며 지워낸다.
처음 구토감을 느낀 것은 18살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로캉탱처럼 처음엔 나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겨울이니까. 봄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넘기었다. 그러나 4월이 되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에 가장 기분이 좋았다. 그 외의 시간에는 불안감에 손이 덜덜 떨렸다. 나의 구토감에 이유가 없다는 게 당시에는 막다른 길과 같았고, 무엇도 그 절망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는 샤워를 하며 비틀즈의 렛잇비를 흥얼거렸다. 내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성모께서 와주시진 않았지만 따뜻한 물줄기와 함께 잠시 마음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샤워 부스를 나서는 순간부터 구토감은 물 밀듯 찾아왔다. 신을 믿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때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철학을 들여다보았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말은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무의미함’이 당연한 것임을 말해준 첫 번째 문장. 존재에 이유가 없다는 것은 막다른 길이 아니라,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문장이었다.
‘구토는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내게서 떠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그것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어떤 병도 아니고 지나가는 발작도 아니다. 나 자신인 것이다.’
18살의 나는 구토가 영영 사라지기를 무언가에 자꾸만 기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곧 나의 존재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일부임을 안다. 사르트르는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나약하고 고통받는 인간이면서 같은 처지의 수많은 이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게 끔찍하게 좋았다. 다른 차원의 대단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같은 걸 겪고 느끼는 무력한 인간이기 때문에 건넬 수 있는 덤덤한 위로라는 게.
in:draft는 김지원의 어중간하게 사적인 글을 위한 공간입니다. 글을 쓰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디자인 일을 하고 영화관과 TV 앞에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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